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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글쓰기와 존재론: 세상의 발견, 내면의 풍경을 따라

imbonita 2025. 3. 24. 19:21

 

클라리시 리스펙토르(1920–1977)는 브라질 문학사에서 가장 독창적인 목소리로 평가받는 작가다. 그녀의 에세이 '세상의 발견'은 일상적 순간을 형이상학적 탐구로 승화시키는 특유의 글쓰기를 집약한다. 그녀의 작품들 중 번역되지 않은 한 권 빼고는 다 읽으면서 감각적 글쓰기에 대하여 매우 깊은 인상을 받았다.

 

특히, 의식의 흐름적 기법으로 프루스트, 뒤라스, 조이스, 버지니아 울프 등과도 매우 다르고, 그나마 페르난두 페소아적 글쓰기와 닮아 있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놀랍게도 리스펙토르는 페소아의 책을 친구를 통해서 알게 되었는데 페소아의 명료성이 두려워 읽기를 포기했다고 고백하고 있었다.

 

리스펙토르는 언어로 세계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연금술사이자, 말할 수 없는 것을 향한 끝없는 질문자였다.

 

이 글에서는 그녀의 글쓰기와 문학적 기법, 삶의 단편으로서 이혼, 그리고 인간적 고뇌가 교차하는 지점을 탐색해 보았다.

 

우선, '철학적 크로니카'라 불리는 리스펙토르의 문체와 글쓰기를 보면, 상상과 환영으로 일상의 신비화를 추구한다. 신문에 연재한 에세이들인 '세상의 발견'에서 그녀는 빨랫줄에 걸린 옷, 창문 너머로 들려오는 소리, 주변의 새, 닭과 같은 평범한 대상을 관찰하며 존재의 의식을 투영시킨다. 스스로가 거부하는 서사적 구조보다는 몽환적 감각에 의존한 의식의 흐름과 시적 단상을 추구했고, 언어 자체를 의문시하는 메타적 성찰을 담았다. '나는 단어들을 조심스럽게 다룬다. 그들이 거짓말을 할까 봐 두렵다'는 인터뷰 발언은 그녀의 언어 불신을 드러내며, 이는 작품 전반에 흐르는 불안과 맞닿아 있다.

에세이 '진짜' 소설에서 그녀는

'사람들이 진짜 소설이라고 부르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소설을 읽으면 사건과 묘사의 짜임으로 그저 지루함을 느낀다.'라고 고백한다. 그녀는 많은 독서를 한 문학소녀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정치,사회,문화,과학에 발을 담근 지식인도 아니었고, 집중력과 끈기 있는 글에는 울렁증을 나타내는, 어느해에는 추리 소설만 읽기만 한, 단편을 선호한, 비전통적 작가였다.

 

나는 문학인도 아니다.

책을 쓰는 일로 '직업'이나

'커리어'가 바뀌지 않았으니까.

나는 무의식적으로 어떤 것이 올 때,

내가 정말 원할 때에만 쓴다.

나는 아마추어 작가일까?

253p

지식인?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또 다른 하나는 사람들이 나를 지식인이라 부를 때 내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중략)...

나는 직관과 본능을 이용한다.

지식인이 되는 것은 문화를 알아야 하는데

나는 너무 보잘것없는 독자이며,

...(중략)...진정한 문화를 잘 모른다.

인류 역사상 중요하다고 하는 작품도 읽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매우 적게 읽는다.

...(중략) ...

누구에게도 지도받은 적 없이 가끔씩 읽었다. 게다가 고백하자면-이번만큼은 부끄럽다 몇 년 동안 추리 소설만 읽었다.

252~253p

 

대신 그녀에게는 갓 신내림 받은 처녀 무당처럼 글에 대한 감각적 글쓰기 행위를 통해서 자기 사유로 빠져드는 신기(神氣)를 가지고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사실 나는 언어를 선택한 적이 없었다. 내가 한 일은 고작 내게 복종하면서 나아가는 일이었을 뿐,

내게 복종하면서 나아가는 것, 사실상 글을 쓸 때 내가 하는 일이 그것이다.

490

 

이렇듯 리스펙토르의 글쓰기는 일종의 무의식적 제례 의식과도 닮아 있기에 자신의 글쓰기는 논리적으로 표현하거나 언어로 전달해 줄 수 없었던 것이었다고 문학청년에게 편지로 고백한다.

그래서 리스펙토르는 '나는 사람들이 내게 설명이 아니라 이해를 주길 원한다.'라고 고백한다.

, 그녀는 스토리를 구상하고, 플롯을 짜는 공식적 소설 작법을 해체하는 글쓰기를 추구한다. 1969 10 4일에 쓴 '모험'에서

내 직관은 글로 옮기려 할 때 더 명확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 글쓰기는 필수다. 한편으로 글 쓰는 일은 감정을 감추지 않는 방법이고, 또 한편으로 나는 글 쓰는 과정 없이는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쓴다.

382p

라고 고백한다.

 

불명확한 세상은 글쓰기 행위를 통해서 자신만의 명확하고 안정된 소설적 세계를 창조할 수 있기에 그녀의 글쓰기 행위는 제단 위에서 제의를 올리는 여 사제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신내림을 거부하면 자신이나 주변인이 죽음에 이를 수 있기에 어쩔 수 없이 내림굿을 통해 온몸으로 신께 정결한 몸을 투신하듯이.

그래서 리스펙토르는 어쩔 수 없이 이혼을 하게 된다. 가족을 살리고 자신이 불확정적인 세상에서 고독한 굿판인 '글쓰기'를 위해서 이혼 후에도 7년을 간절히 기다렸던 남편을 떠나보내게 된다.

1968 6, 독자로 보이는 F.N.M. 부인

에게 보낸 공개편지에서 그녀는 자신의 이혼에 대한 고해성사를 한다.

 

당신은 제가 전 남편과 결혼 생활을 하며 우울증을 앓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하면서 저를 동정하는 척하셨지요.
부인, 그런 동정은 할 일 없는 당신을 위해서나 쓰세요.
당신이 진실을 알기를 원한다면 여기 당신이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해 드리겠습니다.
제가 전 남편과 헤어졌을 때, 그는 제가 돌아오기를 7년 동안 기다렸지요.
그는 아주 좋은 사람과 재혼했고 그것으로 저는 마음의 짐을 덜었습니다.
당신이 이런 것들을 이해하실 수 있다면 좋을 텐데요.
그건 정말 안도와 기쁨이었답니다.
나는 그가 좋은 배우자라는 것을 알고 있고, 그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니 이제 제가 죄책감을 느껴야 할 이유는 없어졌으니까요.
저는 여전히 전 남편의 가족과 가깝게 지내고 있습니다.
전 남편뿐만이 아니라 그의 아내도 저와 사이좋게 이야기를 나누지요.
F.N.M. 부인, 안타깝지만 제가 방금 당신이 쓴 소설을 무너뜨려 버렸네요.
187~188p

 

1943년 외교관 마우리 구르겔 발렌트와 결혼한 그녀는 유럽과 미국을 전전하며 안정된 생활을 유지했으나, 1959년 돌연 이혼한다. 어느 인터뷰에서 그 이유를 “나는 글을 쓰기 위해 고독이 필요했다"라고 설명했다. 통속적인 외도나 성격차가 아닌 고독한 글쓰기를 위한 제례로서 이혼을 감행한 것이다.

남편의 직업적 특성상 요구된 사회적 역할과 주변부적 삶은 창작에 방해가 됐을 것이다. 이혼 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 정착하며 본격적으로 문학에 매진한 그녀는 “가장 사적인 고통이 가장 보편적인 글을 낳는다"라는 신념으로 마지막 작품인 '별의 시간'에서 '마카베아'와 같은 인물을 탄생시킨다. 그녀에게 이혼은 예술과 삶의 갈등을 구분하는 장벽이었던 것이다.

이후, 그녀가 사랑한 것은 일상의 사소한 순간이었다. 계란 프라이를 뒤집는 행위조차 우주의 신비와 연결된다"라고 말할 만큼, 소재의 평범함을 초월적 사유로 확장시켰다. 반면, 위선과 관습적 사고를 혐오했다. 사회가 여성에게 강요하는 역할에 저항했고,편안한 무지”를 경계했다. 1976년 인터뷰에서 “나는 불편함을 선택한다. 진실은 편안하지 않기 때문”이라 말한 것처럼, 그녀의 글은 독자에게 불편함을 강요하며 안락한 인식을 뒤흔든다.

 

나는 불안에 대해 이야기했다. 불안이란 무엇인가? 솔직히 말해 나는 어떤 의미를 묻고 찾는 경향이 있고, 그것 자체가 이미

불안이다. 그 불안은 삶과 함께 시작됐다. 우리는 탯줄을 자르고 분리의 고통을 느낀다. 결국 나는 삶을 사는 일에 눈물을 흘린다. 삶을 사는 것? 삶을 사는 것은 농담이 아니라 매우 진지한 일이다.

 

 

그러니까 그것은 행복이었다. 먼저 그녀는 허무를 느꼈다. 그러고 눈앞이 흐려졌다. 행복이란 이런 것이었지, 하지만, 아, 나는 어찌나 유한한가, 이 세상에 대한 사랑은 나를 이토록 초월하는가! 이 유한한 삶을 향한 사랑이 행복을 천천히, 조금씩 죽인다. 행복하면 무엇을 하나? 행복으로 무엇을 하나?

...(중략) ...

아니다, 그녀는 행복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낯선 땅에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녀는 자기가 잘 아는 시시한 삶을 선호했다."

1972 6 3일 자 에세이

 

나는 도덕적 교훈을 싫어한다.

382p

 

결국, 그녀는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사이의 모순의 미학으로, 의식과 무의식의 '바깥'의 시선으로 자신의 창조적 글쓰기를 완성해 나간다.

 

"문장은 만드는 것이 아니다.

문장은 탄생한다."

-819p-

 

이처럼 리스펙토르의 처절한 글쓰기는 '상처' '불완전함의 아름다움'을 예술로 전환하는 과정이었다. 이 책, '세상의 발견'은 세계를 발견하는 것이 아닌 재발명하는 작업이다. 그녀가 남긴 문장나는 희망이 두려워. 절망은 나를 움직이게 하니까”은 삶과 예술을 대하는 태도를 압축한다고 본다.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글들은 여전히 우리로 하여금 사물의 표면을 의심하고, 언어의 한계를 넘어 내면의 심연을 마주하도록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산문집을 통해 리스펙토르의 문학적 사유와 개인사가 어떻게 교차하는지를 보여준, 존재론적 철학서로 읽혔다. 그녀의 삶 자체가 글쓰기와 동일시되었음을 상기시키는 결말로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