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키 17과 프리다 칼로, 고래(천명관)의 예술혼이 만나는 지점 – 죽음과 자아를 말하다
봉준호 감독의 '미키 17'은 단순 킬링 타임용 SF 서사가 아닌, 반복되는 죽음과 재생을 통한 존재의 재구성이라는 철학적 사유를 던진다. 주인공 미키 17이 16번의 죽음을 거쳐 재탄생하는 과정은 100여 년 전 무수한 우리 선조들이 그러했듯이, 마치 프리다 칼로가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파편화 속에서 자화상으로 자아를 재발견한 여정을 상징화 하고 있다

이 영화는 복제 인간이라는 소재를 통해 내면의 다중성과 소모품으로서의 인간성을 날카롭게 조명하며, 프리다 칼로의 예술적 투쟁과 천명관의 소설 '고래' 속 금복의 수난사, 그리고 많은 문학작품들이 보여 준 내면의 변증법적 변화를 은유적으로 겹쳐 보여준다. 나는 영화 속 정치적 관점은 차치하고, 주로 미키 17과 18의 존재론적 상징과 갈등 즉, 죽음의 반복과 자아의 분열을 프리다 칼로의 그림자 속, 천명관의 소설 '고래' 속, 여정(몇 명의 내가 있는 액자 하나, 민음사)의 시 속 미키 17에 시선을 두고자 한다.

미키 17은 죽을 때마다 새로운 버전으로 재생되지만, 기억의 일부만을 유지한다. 이는 프리다 칼로가 교통사고 후 30여 차례의 수술을 겪으며 그린 자화상 속에서 분열된 자아를 탐구한 방식과 유사하다.

프리다 칼로가 그림 속에서 '고통받는 여성', '사회주의자', '디에고의 연인' 등 다양한 정체성을 오가는 것처럼, 미키 17과 18은 일란성 쌍생아로서 동일한 유전적 코드를 공유하지만 각자의 경험을 통해 독립된 인격으로 발전한다. 특히 미키 18의 반항적 성격은 프리다가 남성 중심 사회에 맞선 페미니스트적 저항과 닮아 있으며, '소모품'으로서의 운명을 거부하는 행동은 예술을 통해 고통을 초월한 프리다의 정신을 연상시킨다.
이는 천명관의 소설 '고래' 속에서 '두려움 많았던 산골의 한 소녀가 끝없이 거대한 고래에 매료되어, 큰 것을 빌려 작은 것을 이기려 했고, 빛나는 것을 통해 누추함을 극복하려 했으며, 광대한 인생 바다에 뛰어듦으로써 답답한 산골마을을 잊고자 했으며 마침내 그녀가 바라던 궁극, 즉 스스로 남자가 됨으로써 여자를 넘어서'고자 했던 '금복'의 삶과도 닮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리얼리즘으로 표현된 금복의 수난사와 상징과 은유, 색감으로 영상처리된 미키의 '내면의 죽음'은 문자를 시각화시킨 봉준호 감독의 창조적 예술 기법이었다. 영화를 찍을 당시에는 SF였지만, 작금의 입장에선 리얼리즘이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은 비단 나만의 착각이 아닐 것이다.
천명관의 '고래' 속 금복이 '죽음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거대함을 추구'한 것처럼, 미키 17 역시 행성 개척이라는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는다. 금복이 고래를 통해 죽음의 극복을 발견했듯, 미키 17은 크리퍼(행성 원주민)와의 조우를 통해 '소모품'에서 '생명의 협력자'로 변모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미키 18의 희생은 금복이 '남성이 됨으로써 여성을 넘어서려 했던' 절규와 겹친다.

봉준호 감독은 이렇게 '시스템에 희생당하는 개인'의 비극을 SF적 상상력으로 확장하며, 자본주의와 권력 구조에 대한 비판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지킬과 하이드에서 프리다 칼로까지 영화의 핵심 장치인 '멀티플(복제 인간 동시 존재)'은 일차원적 플롯이 아니라 프리다 칼로의 그림 속에서 분열된 자아가 공존하는 방식과 맞닿아 있으며, 현대인이 겪는 '정체성의 다층성'을 상징한다.

나의 정신 병동에 프리가 칼로가 헨리포드 병원의 침대 하나를 옮겨 온다...
(중략) ...몇 명의 내가 있는 액자 하나. 여정


봉준호의 시선은 '인간 냄새나는 SF'로 향하면서 그 한계와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인간다움의 본질을 묻는다.
시~발, 다 줄 테야...
이 검은 자궁에 무형무색의 열매((들))맺고 말 테야
하지만 미키 18의 결단과 행성의 원주민 크리퍼와의 협력은 새로운 생태적 공생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우리는 몇 번의 죽음을 통해 오늘의 자아를 구축했는가?
'미키 17'은 SF라는 형식적 페르소나를 쓴 인간 실존 드라마이다... 깊은 공감과 공명을 남긴다.
너무 많이 죽어서 더 이상 죽지 않는 죽음!
난 그것을 삶이라고 부른다.
